
차부에서 ― 이시영(1949∼ )
중학교 일학년 때였다.
차부(車部)에서였다. 책상
위의 잉크병을 엎질러 머
리를 짧게 올려친 젊은
매표원한테 거친 큰소리
로 야단을 맞고 있었는데
누가 곰 같은 큰손으로
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짚
었다. 아버지였다.
예전에는 많은 관계가 지금보다 따뜻했다. ‘따뜻’이라기보다 믿음이라고 해야겠다. 누가 가르쳐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. 그냥 알고 있었다. 사람이라면, 지켜야 할 것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대다수의 마음이 생각했다.
선배와 후배는 덜 경쟁했고, 선생님과 제자는 더 가까웠으며, 상관과 부하는 더 인간적이었다. 선생님과 제자, 동료와 동료, 사람과 사람 등은 함께하기 좋은 이름들이었다.
이 모든 관계의 따뜻함이 줄어들고 있다.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전부 빡빡해진대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관계가 하나 있다. 바로 가족의 관계다. 세상이 자꾸 차가워지니까, 상대적으로 가족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. 세상에 내 편이 없어질수록 적은 내 편은 가치 있게 생각된다.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가족을 해쳤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더 분노하고 소름 끼쳐 한다. 마음이 의지하는 최후의 지지선이 사라진다면, 그 이후는 어떠할까. 신뢰의 종말은, 지구의 종말만큼이나 무섭다.
과도한 질책을 받는 아이를 건져준 것은 아버지였다. 자신을 감싸준 아버지의 손은 엄청 크고 따뜻했다. 말하자면, 삶의 빛이 된 손이랄까. 이후로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닮으려고 노력했을 것임이 분명하다. 영화 ‘킹스맨’에서는 ‘매너가 신사를 만든다’고 했다. 이 시에도 비슷한 명언이 깃들어 있다. ‘좋은 어른이 좋은 어른을 만든다.’
나민애 문학평론가